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무함마드 알아보기
메카의 지배 계급은 쿠라이시족이었으며, 무함마드는 그 중에 하심가 출신이었습니다. 하심가에는 아브드 알 무탈리라는 사람이 있었으며, 그의 막내 아들 이름이 아브드 알라였습니다. 아브드 알라는 아미나와 결혼을 하여 무함마드가 태어납니다.무함마드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상인인 아버지의 죽음 이후, 그의 어머니 또한 메디나를 방문하고 귀가길에 병에 걸려 사망하게 됩니다. 고아인 무함마드는 메카에 있는 할버지의 손에 키워지다가 할아버지가 죽고 난 이후로는 삼촌에 의해 성장하게 됩니다. 삼촌은 가난하고 부양 가족이 많았으며, 무함마드는 젊은 시절부터 삼촌과 함께 무역 활동을 다니게 됩니다. 12살 때 무함마드는 삼촌과 함께 시리아를 가게 됩니다. 거기서 기독교의 수도사를 만나게 되는데, 무함마드에게 선지자의 기운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 후 무함마드는 목동일을 하면서 자라나게 됩니다. 당시 아라비아에는 기독교인과 유대인 및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살고 있었습니다.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바인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종교적인 영향을 끼쳤으며, 그들은 9월은 신성한 달이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아라비아 반도 내에서 유대인과 기독교인의 영향으로 인해 유일신 사상이 전파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여전히 다신교 신앙을 모태로 삼고 있었습니다. 카바 신전에는 수백개의 우상이 있었으며, 이슬람의 알라도 카바 신전의 신들 중 하나였습니다. 목동이었던 무함마드는 그의 삼촌의 소개로 부유한 과부인 하디자의 밑에서 일하게 됩니다. 그녀를 대신하여 시리아 방방곡곡을 누비며 무역을 하게 됩니다. 이 무역을 계기로 큰 성공을 거두게 되며, 샴 지방의 특산품을 가지고 메카로 돌아오게 됩니다. 하디자는 15세나 어린 무함마드에게 적극적인 구애를 함으로써, 무함마드가 25세 때 40세인 하디자와 결혼을 합니다. 부유한 하디자와 결혼은 그에게 부와 명예를 주었고, 무함마드는 삼촌의 경제적 어려움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사촌인 알리를 입양합니다. 경제적인 부를 통해 그는 의식주에 대한 문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무함마드는 금식과 사색을 하면서 진리를 찾기 위해서 노력을 합니다. 실제로 그의 종교적 감성은 어린 시절부터 이어져 왔습니다. 무함마드가 어렸을 때 그의 삼촌은 카바 신전 관리인이었습니다. 카바 신전은 검은 돌이 숭배되고 있었지만, 무함마드는 검은 돌이 신으로써 믿음을 가져야 하는지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무함마드는 히라 산 동굴에서 계시를 받고 됩니다. 두려움으로 사색이 된 얼굴로 집으로 돌아오자, 아내 하디자는 그를 진정시키며 그녀의 사촌에게 가서 상황을 설명합니다. 그녀의 사촌은 무함마드가 만난 천사는 가브리엘이며, 무함마드가 선지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디자는 집으로 돌아와서 무함마드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해주며 그를 뒤따라 무슬림이 됩니다. 첫 계시를 받은 후 그의 양자들과 노예 그리고 주위 친구들은 이슬람교로 개종을 합니다. 3년 후 무함마드는 자신의 친구와 친족을 모아 놓고 하늘의 계시로 받은 내용을 가지고 설교를 시작합니다. 그러나 친구와 친족들에게 온갖 모욕과 비난을 받으며 치욕적인 일을 겪습니다. 하지만 무함마드는 메카에서 온 순례자들에게 신은 유일하다는 생각을 널리 전파하기 시작합니다. 메카에서 카바 신전을 유지하면서 순례자로부터 수익을 얻고 있는 부족은 무함마드를 억압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우상 숭배를 거부하고 알라고 유일한 신이라고 주장했습니다. 622년 그는 메카를 떠나 메디나로 이동을 합니다. 무슬림들은 "해지라"라고 그 해를 이슬람의 기원이라고 합니다. 그는 메디나 시대의 이슬람의 예언자이며, 정치의 지배자이기도 했습니다. 한편, 종교적 문제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 경제 규제를 해결하기 노력했습니다. 624년에는 매년 메디나를 공격하는 메카 군을 격파하면서, 이슬람의 사기를 크게 높였습니다. 이슬람 세력이 유럽으로 확산해 나가자 유럽인은 개종을 막기 위해 " 한 손에 검과 한손에 꾸란"이라는 구절을 만들어 흑색선전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었으며, 무함마드는 폭력인 아닌 평화적인 방법으로 이슬람 신앙을 전파 하였습니다. 무함마드는 메디나에서 아랍인과 유대인이 대립하고 있는 것을 알았을 때 그들에게 필요한 해결책은 유일신인 이슬람교를 제안했습니다. 630년에 그는 외교 교섭 때문에 메카에 들어가 카바 신전의 모든 우상을 파괴했습니다. 그는 세율을 낮추고 참정권을 보장함으로써 메카인들의 신망을 얻게 됩니다. 그는 이슬람교의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힘이 강력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무함마드는 전쟁을 지속하면서 아라비아 반도의 대부분을 통일하게 됩니다. 681년 6월 8일 메디나의 집에서 숨을 거두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시신은 오늘날 메디나에 있는 예언자의 모스크에 묻혀 있습니다. 끝으로 무함마드는 그 당시 부조리한 사회 악습과 관행을 폐지할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개혁가인 동시에 평등주의자라고 생각됩니다. 국민들을 억압하지 않고 평범한 지도자로써, 소박하고 겸손한 그의 행동을 본받아 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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