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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수피즘의 변천사

by 정보파일러 2020. 6. 21.

금욕주의 종파인 수피즘의 변천사

이슬람의 신비주의 성향의 종파로, 금욕과 청빈한 삶을 중시하는 수피즘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수피즘은 아마도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분파일 것입니다. 조용한 명상, 내면 성찰, 높은 영성 등이 수피의 특징입니다. 수피즘을 이슬람의 한 종파로 여기는 경우도 있는데, 수피즘은 종파가 아니라 종파에 상관없이 그 내부에 존재하는 영적 지향을 추구하는 흐름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쉽게 말해서 수니파에 속한 수피도 있을 수 있고, 시아파에 속한 수피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슬람을 실천하는데 있어서 신비주의와 영성을 강조하면 전부 타사우프, 즉 수피즘인 것입니다. 수피즘은 내면의 각성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믿음을 경험하고자 합니다.수피 운동은 창시자가 따로 있지 않습니다. 우마이야 왕조 때 여러 사회적 경향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처음 등장했습니다. 당시 이슬람 제국이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세계 곳곳의 부가 흘러 들어왔고 과거에 성실했던 무슬림이 세속적 쾌락을 탐닉하기 시작했습니다. 양심적인 무슬림은 무슬림 공동체 내에서 풍요가 넘쳐흐르고 화려한 행사가 늘어나는 것은 일종의 사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속에 물든 삶이 급기야 이슬람의 순수한 메시지를 집어삼기고 마는 위기가 닥쳤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또한 여러 이슬람 율법학자가 율법학파를 창시해 율법을 강조하는데 대해서도 이슬람 정신이 아닌 껍데기만 중시한다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습니다. 꾸란이 세속적인 삶에 내재한 기만적인 속성에 대한 자주 언급했다는 점에서, 알라는 사람이 무엇을 중심에 놓고 살아 왔는지 기억한다고 무함마드가 누누이 강조했다는 점에서 이런 생각은 뿌리가 깊은 것이었습니다. 급기야 영적 지향이 강한 무슬림 사이에서는 속세를 벗어나 검소한 삶을 살아가면서 타인의 모범이 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그들은 염색하지 않은 양털 옷을 주로 입고 다녔는데, 이 때문에 아랍어로 양털을 뜻하는 수피가 굳어 호칭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우마미야 왕조와 압바스 왕조의 교체 시기가 되면서 세상은 어수선해졌고 잦은 전란에 염증이 난 사람들의 수가 늘어갔습니다. 지적으로나 영적으로 뛰어난 아랍 전역의 인물들이 수피즘에서 말하는 자가 각성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압바스 왕조가 전성기를 누리던 때에도 개인적으로 수피즘을 추종하겠다는 사람은 꾸준히 늘어나 마침내 타리카스라는 수피 교단이 12세기부터 성립되었습니다. 타리카스는 별도의 본부를 두었고, 무스림 지역은 물론 비무슬림 지역에서 선교 활동을 펼쳐 나갔습니다. 수피 교단의 지도자는 '샤이흐'로 불렸다. 그들은 일종의 수도원 같은 것을 차려 놓고 수도원장 구실을 했는데, 수피 제자로부터 막강한 권위를 인정받았습니다. 샤이흐는 특히 무함마드의 삶 그 그 자체를 강조했습니다. 무함마드가 알라를 지향하며 살아가는 삶의 모범을 보였다고 평가했고, 자기들의 임무는 수피 제자들과 함께 그런 전통을 유지하는 것이라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수피즘의 주요사상은 알라에 대한 믿음은 명상, 성가, 타인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 극기 등을 주제로 하는 프로그램을 거치는 독실한 무슬림만이 경험할 수 있습니다. 세속적인 재산은 영혼을 타락시킨다고 생각을 합니다. 근검절약이 영적인 부를 얻는 핵심 열쇠이며, 수피즘의 길은 인내, 알라에 대한 감사, 알라가 미래를 꿰뚫어보는 능력에 대한 완벽한 신뢰를 요구합니다. 꾸란과 하디스 이외의 또 다른 지혜가 수피 지도자 샤이흐의 가르침에 안에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숨은 의미가 담긴 시와 지혜로운 이야기 등으로 구성되는 샤이흐의 가르침에도 귀를 기울여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압바스 왕조 때부터 대부분의 수피는 이슬람 율법의 울타리 내에 머물렀지만, 그 일부는 극단을 치닫기도 했습니다. 기괴한 의식, 검 삼키기, 숫자점 등의 멍청한 행동이 속류 수피즘에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일부 수피는 음주, 무덤에서의 기도 등을 서슴없이 자행함으로써 이슬람의 기본 명령을 부정했습니다. 또한 음악과 춤에만 빠져 지내는 수피도 상당수 늘어났습니다. 종교적 순수주의를 추구할 때 생기는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게 핑계였습니다. 결국 전통적인 울라마 사이에서는 수피즘에 대한 악성 평판이 높아졌습니다. 오늘날에도 수피즘을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는 무슬림 지도자가 많은 것은 이때의 극단적인 풍조 때문일겁니다.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수피즘과 정통 이슬람을 결합하려는 시도가 등장했습니다. 저명한 몇몇 율법학자가 율법과 영성을 종합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은 이맘 알 가질리였습니다. 그는 이슬람에 대한 율법적 접근에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던 율법학자였지만, 율법으로는 영적인 부분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한계를 깨닫고는 말년에 수피즘을 차용하여 이슬람을 실천하려고 했습니다. 이런 가잘리의 노력 덕분에 율법과 영성 사이의 간격이 많이 좁혀졌고, 수피즘은 무슬림 세계에서 다시 한번 널리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수니파 중 극단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을 있는 학파는 아직까지도 수피즘을 잘못된 것을 믿는 무슬림으로 여기거나 이슬람의 울타리 밖에 있는 비무슬림으로 여깁니다. 수피 운동은 여러 가지 점에서 무슬림 세계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16세기 이후로, 정치적 및 경제적로 쇠퇴해 가던 무슬림 세계에서 수피즘은 이슬람을 일반 대중에게 가르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전통적인 율법학자가 무슬림 대중 곁을 떠나 폐쇄된 공간에서 연구와 토론에만 열중했을 때 수피즘은 선교를 위해 세계 곳곳을 돌아 다녔고, 외지에서 영적 지도에 전념했습니다. 이슬람이 인도네시아 중앙아시아에 전파된 것은 거의 대부분 수피의 노력 덕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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